서승모
‘도로’와 ‘길’은 유사한 의미이지만 그 단어가 풍기는 어감은 사뭇 다르다. 기능을 위해 계획적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도로’라면, ‘길’은 우발과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덧붙여지고 응용되고 변형되는 공간이다. 신도시의 보행로를 걷는 것과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을 거니는 것은 전혀 다른 체험이다.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처럼, 단조로운 도로에 돌발적이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불쑥불쑥 등장할 때, 사람들은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가설. 가설. 가설]은 길가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평상이나 벤치처럼 다양하고 편안한 가구들을 배치하고, 친숙한 높이의 지붕과 처마를 조성하여 사람들이 앉거나 머물기도 하고, 무언가를 읽기도 하면서 쉴 수 있는 ‘길’을 만들고자 했다. 단순히 목적지와 목적지를 연결하는 동선 기능을 넘어서, 길 자체가 목적지이자 경유지가 되도록 하는 바람이다. 이를 구성하는 재료인 가설재(假設)는 규격화 된 모듈 시스템에 의해 쉽게 설치와 해체가 가능하고,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규격이 정해진 부재들의 결합과 반복에서 나오는 독특한 리듬감과 패턴이 길의 표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설재가 갖고 있는 미완의 분위기가 그 곳을 찾는 사용자들이 품게 될 호기심과 상상력의 풍경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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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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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
서울역사박물관